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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03 |
1981.12.11 호기심 |
이제 중 1도 얼마 남지 않고 시험이 다가오는데, 나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이 일기에 기록한다.
부부는 일심동체란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의 뜻을 잘 안다. 부부는 한 마음 한 몸(같은 몸)이란 뜻이다.
우리 엄마 아빠는 정말 일심동체인가? 나는 거기에 대해서 더 이상 의심을 품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 아빠는 언제 어디서 몇 살 때부터 만났는지 궁금해졌다. 고모가 그러시는데 아빠가
'하숙생' 이었다고 말씀하셨다. 혹시 그 하숙집에 또 여학생은 없었는지 궁금해졌다. 졸라대는 끝에
엄마한테서 약간의 자료를 얻었다. 엄마집에서 아빠가 하숙했다는 점을. 그런데 엄마 말은
"내가 너만해서 아빠가 하숙을 했는데 물을 길어다 놓으면 아빠가 세수할때 물을 펑펑 썼다"고 하셨다.
그 자리에서는 웃고 넘겼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엄마가 실수를 하신 것 같다. 아빠는 23살때 하숙을
했다고 하셨다. 엄마가 나만 했다면 14살이고 9살 차이가 나야 한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2살 차이다.
나는 아빠로부터 직접 아빠의 청년때의 스토리를 듣고 싶다. 그리고 엄마랑 어떻게 하다가 결혼을
했는지도......
(정아의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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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12.13 엄마, 아빠의 과거 |
아빠는 18살에 서울에 올라 왔다. 용인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1년간
농사를 지은 다음 공부가 하고 싶어서 실은 무작정 상경을 한 것이었다.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가.
6.25사변이 나기 전 우리는 비교적 많은 식구가 약 30마지기
(약4,500평 정도)의 논과 15마지기(약 2,000평 정도)의 밭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비교적 안정된 집안 이었다. 그런데 그놈의 6.25가 끝나고 나니 집안이
형편없이 되어 버렸다. 집안의 기둥인 큰아버지가 인민군에 끌려가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고, 할머니께서 상심 끝에 또 돌아가시고, 고모는
시집을 가게 되었다. 남은 식구는 그때 이미 90세가 넘은 증조할머니, 60세가
넘은 할아버지, 27세의 큰 엄마와 3살,5살,7살 된 어린 조카들, 그리고 이집안의
막내였던 17살 된 아빠뿐이었다.
도데체 농사 지을 사람이 없어 아빠가 고등학교 가는 것을 포기 하고 농사를 지었다.
1년 농사일을 하고 보니 이러다가는 배우는 것은 영영 끝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일을 일부 소작
(농사일을 남에게 맡기고 나중에 수확량에 반만 받는 것)을 주고 18살이 되는 해 1월에 공부를 할 욕심에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그러나 좀처럼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약국에서 약 배달을 하면서 또 1년을
보내게 되었다.
이게 무슨 꼴이람. 공부도 못 할것 같으면 차라리 시골로 다시 내려가던지 무슨 수를 써야지 하는 생각에
무조건 약국을 나왔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독립을 하자고 결심을 했지. 이렇게 해서 낮에는 큰 약국에서
약을 사다 작은 약국에 파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지.
그때 너희 외할머니께서 약국을 하고 계셨다. 외할아버지는 경기도청에 근무를 하셨고, 그 때 할아버지께서
"저 남궁학생은 참 착실한 학생이야" 하면서 안집에 아이들하고 밥하는 할머니가 계시니 다른 집에서
고생하지 말고 거기와 살라고 하셨다. 그 때 안집에는 큰 외삼촌, 엄마, 그리고 할머니 동생들 3명이
밥해주는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지. 이때 아빠는 19살 엄마는 17살. 엄마가 너만할때라고 한 것은 정확히
17살 때의 이야길거다. 우리들은 6명이 형제처럼 2년을 거기서 살았다.
아빠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을 가고 다시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을 한 것이 25살 때의 일이다.
군대를 다녀와 보니 엄마도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 때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빠가 다시 고려대학 경영학과 2학년으로 편입을 하고 보니 엄마가 먼저 졸업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떄 엄마를 시집을 보낼 생각이었지만 엄마가 계속 버티면서 만학도인 내가 졸업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도 하고 나서 아빠 나이 30살, 엄마 나이 28살에 결혼을 해
지금 정, 훈, 경의 엄마 아빠가 되어있는 것이란다. 이제 됐느냐?
여기서 하나 특기할 사항은 엄마가 아빠를 끈질기게 기다려 줬다는 거다. 너희들, 엄마가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니? 물건 하나 괜찮은 것 골랐거든. 나도 훈이처럼 엄마한테 혼날 각오하고 이 긇을 쓴다.
무슨 일이 생기거든 응원 부탁!
(아빠의 일기 중)
가족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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