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석" 성공적인 삶을 만들어온 시간! 기억과 추억 그리고 에피소드
에피소드 01   |   한 반에 운동화 한 켤레   |   저서 [원더랜드]중에서
에피소드 02   |   할머니의 지혜   |   저서 [질라래비 훨훨]중에서
에피소드 03   |   엄마,아빠의 과거   |   가족일기 중
에피소드 02
할머니의 지혜

저는 한국인들의 마음 속 한 구석에 면면히 전해 내려오는,
약간은 막연한 것 같은 신성사상(神仙思想)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수로부인 이야기라든지,
고운 최치원 선생 이야기같이 아주 신비스럽기까지 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평범한 옛 노인들의 생활 속에서도 신선과 같은
면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한 점을 지금 제
할머니에게서 발견합니다.

제 할머니는 호적상 1863년에 나셔서 1966년에 돌아가셨으니까
우리의 나이 셈법으로 보면 104세까지 사신 셈입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 살아 계셨을 때 늘 일본놈들이
호적정리 할 때 잘못해서 네살을 줄여 놓았다고 불평하셨음을 감안하면, 돌아가실 때의 실제 연세는
108세였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제 어렸을 때 하셨던 일들을 지금 와서 곰곰히 생각해 보면
'아! 그분이 바로 신선이셨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는 기억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할머니의 예언 하나]
할머니는 많은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한번은 음역으로 7월 백중 때였습니다. 젋은 사람들이 두레를 놀면서
올해는 풍년이 올 것이라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동리 길을 돌아다녔습니다. 들에는 모든 곡식이 잘되고
있었습니다. 꽹과리, 북, 장구 소리가 요란하고 아이들은 두레 노는 사람들을 따라 신나게 뛰어 다녔습니다.
저도 아이들을 따라 다니가 집에 들어와 보니 할머니는 마당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계시더니,

"딱한 것들."
하면서 혀를 차셨습니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저는 의아해서 할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뜻밖에도 할머니께서는,
"올해는 흉년이다."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올해는 벼가 여물기 전에 큰 바람이 온다."
정말 그해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벼가 여물 무렵 큰 바람이 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큰 바람이 바로 태풍이었습니다. 그해 농사는 평년에 비해 반 밖에 안된다고 가을 일을
마친 어른들이 한숨을 쉬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 기이하기도 합니다.
할머니는 어떻게 한여름에 가을 태풍이 올 것을 미리 아셨던 걸까요?

[할머니의 예언 둘]
제가 그보다 좀 더 어렸을때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해를 1945년으로 기억 합니다. 그때 우리 집안에는
세 사람이 일본군에 끌려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징용에, 형님과 사촌형님은 일본군에 가계셨습니다.
저는 어려서 그때의 일을 잘 모르지만 할머니는 그분들의 생사를 늘 염려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밭에서 일을 하시다 들어 오셔서는 매우 슬픈 얼굴을 하셨습니다. 셋 중에 누군가 돌아 오지 못할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해 8월 해방이 되고 아버지께서 제일 먼저 돌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봄, 형님이 상해로 부터 돌아왔습니다. 결국 우리 집안의 사촌형님 한 분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촌형님은 1945년 봄에 휴가차 집을 다녀 갔습니다. 만주의 일본군 기병대에서 근무한다고 했습니다.
휴가차 집에 올 때면 말을 타고 왔었습니다. 만주에서 휴가를 받아서는 기차로 수원까지 와서 그곳에 있던
기병대에서 말을 빌려 타고 왔던 듯 합니다. 저는 사촌형님이 휴가 왔다 떠나던 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
합니다. 형님은 건너마을 작은 집에서 말을 타고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어른들께 큰절을 하고 마당에
나와서 닭장도 들여다 보고 돼지우리도 들여다 보고 머뭇머뭇하면서 집을 나와 제 머리를 한참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리고서는 말을 타고 떠났습니다.

1946년, 그러니까 해방 이듬해 봄에 집을 떠났던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돌아 오자 할머니는 탄식하듯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노아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노아는 사촌형님의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사촌형님은 1946년 3월 휴가를 다녀간 때부터 그해 8월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4,5개월 사이 어느 때
만주에서 전사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밭에서 집으로 돌아와 슬퍼하시던 때는 그 사이인 6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그후 돌아가시기 전에, 들에서 일을 하다 누군가 살붙이가 죽는 꿈을
꾸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을 하다 잠깐 허리를 펴려고 일어서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는데, 그때 하늘 색깔이 온통 은빛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아, 누군가가
다쳤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할머니의 교훈]
할머니는 백네 살, 당신 계산으로는 백여덟 살에 돌아가셨는데, 그 생활이 아주 절도가 있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 그때는 먹을 것이 별로 없었던 때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죽을 쑤어 주면서
'많이 먹어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막내 손자인 저에게도 '많이 먹어라.'
하기보다는 '배부르기 전에 수저를 놓아라.'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분은 확실히 100년은
앞서 사신분 같습니다. 할머니는 절대로 과식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많다 싶으면 잡수시던 밥을 꼭
남기셨습니다. 그렇다고 버리는 법도 없었습니다. 꼭꼭 눌러 두었다가 화로에 데워서 다시 드셨습니다.

또 당신 몸을 매우 정갈하게 유지하셨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날이라도 꼭 우물가에 나가 웃옷을 벗고
찬물로 세수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방걸레를 깨끗이 빨아서 당신 발 청소는 직접 하셨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그렇게 하셨습니다. 또 연세가 100세를 넘기고서도 물레로 실을 뽑으셨습니다. 새하얀 실타래를
계속 만들어서 동네 아이들의 돌 날이면 꼭 가셔서 그것을 목에 걸어 주셨습니다. 참으로 부지런하셨던
분입니다.

할머니께서 주셨던 교훈 몇 가지를 되새겨 보면 '이것이 바로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할머니께서는 끓는 물을 수채에 버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지렁이가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공해로 찌들어가는 산과 들을 생각하면 물을 버리는 일에서조차 자연과 생태계를 생각했던
할머니의 지혜야말로 얼마나 앞선 생각이었는지요.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할머니의 지혜 하나]
어렸을 때 제가 살던 집 마당에 큰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절대로 설익은 살구를 따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살구가 무르익어 저절로 한두 개 떨어질 무렵, 나무를 흔들어 한꺼번에 따서 그 날로
동리 사람들과 나누어 먹게 하셨습니다. 살구를 따서 하루나 이틀 두었다 먹으면 이미 맛이 한물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무르익은 제철 과일을 나무나 밭에서 따는 순간 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건강에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지혜 둘]
할머니에게서 배운 비법이 또 하나 있습니다. 딸꾹질이 나면 재채기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딸꾹질이 날 때면 종이를 가늘게 말아 코 속을 건드리면 재채기가 나오고, 재채기를 서너 번만 하면
영락없이 딸꾹질이 멎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 비법이 희랍시대의 철학자 플라톤이 쓴 [다이아로그]라는
책 속에도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연세대학교 조우현 교수가 [향연]이란 제목으로 번역한 책 말입니다.
할머니께서 [향연]이란 책을 읽으셨을 리 없으므로 이러한 비법은 동서양이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이제 와서 장수비결이니, 건강식이니 하는 것에 관해 써 놓은 책들을 읽어 보면 바로 할머니께서 평생
실천했던 일들을 부분부분 설명한 것들입니다. 아버지께서도 94세에 돌아가셨는데, 할머니와 거의 같은
생활을 하셨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늘 말씀 하셨습니다.
"나는 어머니만큼은 못 살거야, 나는 어머니만큼 철저하지가 못해."
결국 신선이란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그 순리에 따라 무리하지 않음으로써
주어진 천수를 다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선조들 중에는
이러한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깨달아 신선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간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서[질라래비 훨훨]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