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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직교수가 좌파 경제사학자 대표? 식민지근대화론 주장, 친일과 극우, 박정희 '합리화'로 전락한 경제학자 산사람 이영훈 교수 이론의 뿌리는 '안병직학파'에 있다 이번에 종군 위안부를 매춘부로 모독했던 잔챙이 친일파 이영훈은 세뇌 받은 삐에로에 불과하다. 이영훈의 배후에는 친일 거물 안병직(安秉直.67)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이영훈은 동아시아 역사포럼이란 무국적적 매판 학파에 속해있는데 임지현 한양대 교수(서양사), 도면회 대전대 교수(한국근대사), 박환무 한양대 강사(일본근대사),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한국고대사) 등이 회원으로 있다. 이들은 서울대 출신의 안병직(경제사)교수의 제자들로 안병직의 친일 매판사상을 전수 받은 자들이다. 경제사학자인 안병직은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의 입장에서 80년대 중반 중진자본주의론으로 입장을 바꿨는데 좌파 학자들은 그의 전향을 투항 또는 변절로 보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발전론을 들먹이며 친일파를 옹호하며 친일 청산에 대해서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과거 청산은 친일파 혹은 친미파 여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민족반역자를 단죄하는 작업이다. 우리 몸을 다 들어내기 전에는 친일·친미적 요소는 모두 없앨 수 없다. 그렇게 하면 한국사회가 해체될 것이다. 식민지 잔재청산은 당시 현실을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출발해야한다. 기업과 교육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경영상의 문제로 일제와 어느 정도 타협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따라서 식민지 잔재청산은 친일·친미파의 청산이 아니라 민족에게 적극적으로 해악을 남긴 반역자를 처단하는 작업이다. 북한에선 친일·친미파를 다 처단했다. 그 결과 발전의 싹을 잘라버렸기 때문에 아주 무력한 사회가 돼버렸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미군정의 도움으로 친일파가 득세한 것을 당연시 했다. “해방공간에선 독립운동 세력과 친일·친미적인 민족세력이 싸워서 결국 독립운동세력이 패배했다. 미국의 원조체제 아래에서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했다.” 그는 또한 친일파 독재자 박정희를 다음과 같이 합리화 시켰다. “근대 사회를 만든 이들은 타협적이었고 때묻었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근대사회 건설의 주역이었다…우리 근대화는 박정희의 군사독재체제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계층간의 갈등에서 오는 혼란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병직의 대표작은 1930년부터 1945년까지의 한국 경제 흐름과 발전상을 입증한 ‘근대 조선 공업화의 연구’인데 이 책은 일제 강점기 하의 한국이 일본 덕분에 산업이 발전되었다는 식민사관에 입각한 책으로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출간돼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2001년 8월 서울대에서 정년 퇴직한 안병직은 친일의 공로 때문인지 2002년부터 일본 후쿠이(福井) 현립대의 우대로 동 대학원 특임교수로 임용되어 근무 중이다. 참고로 안병직은 경남 함안 출신이고 이영훈은 대구 출신이다. 우리는 학위를 따기 위해 단순히 스승에게 세뇌된 잔챙이 친일파 이영훈을 공격할 게 아니라 거물 친일 개발론자 안병직 휘하의 조직적 친일 학파가 일본 극우파의 이론을 학문연구를 빙자하여 국내에 퍼뜨리고 있는 점을 주목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