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외국어 사전을 만든 사람은 프랑스의 가톨릭 신부들이었습니다. 1880년에 이분들이 <<한불자전>>을 펴냈지요. 지금 봐도 참 대단한 사전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사전을 만들면서 제일 애를 먹었던 건 표준화된 맞춤법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메추라기라는 새이름이 요즘 국어사전에는 모두 메추라기로 되어 있지만 <<한불자전>>에는 "못차라기' '모차라기' '뫼차라기' '묘차락이'로 표제어에 올라와 있습니다. 표기의 안정성이 없다 보니까 똑같은 단어를 네 번이나 같은 사전에 올린 겁니다. 너무 낭비적이지요. 중국어를 흔히 뜻글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중국어는 글자 하나하나가 개념 하나를 나타내는 굉장히 심오한 글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중국 글자는 십여만개가 넘지만 이 중에는 <형성>이라는 원리로 만들어진 글자가 90퍼센트 가까이 됩니다. 형성은 말 그대로 모습과 소리라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중국 글자 안에는 그 글자를 어떻게 발음하라는 실마리가 주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말로는 <성>으로 발음되는 중국 글자를 한번 볼까요? 成 城 盛 誠 晟. 그러니까 중국 글자는 사실은 소리글자가 되고 싶은 간절한 뜻을 못 이룬 뜻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어로 나타낼 수 있는 소리의 가지수는 얼마나 될까요? 사투리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적으면 400에서 많으면 800가지라고 합니다. 평균 600개라고 칩시다. <國 궈>, <背 베이>, <大 다이> 이런 식으로요. 한국에서 만들어진 옥편을 보면 맨 뒤에 한글로 한자를 찾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들어가 있는 한글 소리의 가지수는 약 500개입니다. <국 國>, <배 背>, <대 大> 이런 식으로요. 일본에서 만들어진 옥편에도 그런 것이 있는데 가나라는 일본 글자로는 400개밖에 담아내지 못합니다. <가쿠 國>, <하이 背>, <다이 大> 이런 식으로요. 중국어 소리 600개를 한국어는 500개로 담아냈고 일본어는 400개로 담아냈습니다. 차이가 별로 없지 않냐구요? 그런데 중국어도 그렇고 일본어도 그렇고, 한국어로는 낱음절로 나타낼 수 있는 소리를 두 음절로 나타낸 게 많잖아요. 게다가 한국어의 토박이 소리는 여기에 집어넣지 않았습니다. 토박이말까지 계산하면 한국어로 나타낼 수 있는 소리의 종류는 중국어와 일본어의 몇백배도 넘습니다. 한글은 <궈>는 물론이거니와 <꿔>, <꿩>, <꿰>, <꽈> 얼마든지 나타낼 수 있구요, <베이>는 물론이거니와 <뻬>, <뼁>, <뺑>, <뻥>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구요, <다이>만이 아니라 <닥>, <단>, <닫>, <달>, <담>, <답>, <닷>, <당>, <닺>, <닻>, <닿>, <닭>, <닮>, <닯>, <닦> 얼마든지 나타낼 수 있습니다. 글(=그림)이 먼저 나타났을까요, 말(=소리)이 먼저 나타났을까요. 당연히 말이 먼저 나타났습니다. 글 없는 민족은 있지만 말 없는 민족은 없잖아요. 그러니까 한자도 원래는 말을, 다시 말해서 소리를 나타내려고 만들어낸 글자입니다. 그런데 기왕이면 뜻도 담고 싶어서 하나는 一, 둘은 二, 셋은 三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나갔겠지요. 그런데 끝까지 그럴 수가 있나요? 결국에 가서는 뜻보다는 소리를 나타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형성> 방식으로 글자를 만들어나가게 되지만, 이미 글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졌지요. 뜻글자인 척 신비화시키려고 하지만 한자는 뜻글자도 못 되고 소리글자도 못 되는 어중간한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배우기만 어렵구요. 일본 글자도 그렇지만 중국 글자도 컴퓨터로 입력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한자 변환을 하려면 동음이의어 중에서 또 선택을 해야 하구요.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문자 개혁을 하려고 20세기 들어와서 애를 썼지만 뜻글자도 아니고 소리글자도 아닌 어중간한 한자에 기대야 하는 상황 때문에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 글자, 곧 한글은 어떤가요. 한국어도 글보다는 당연히 말이 먼저 있었고 한글은 그 말을, 다시 말해서 소리를 정확히 담아내기 위해서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글자입니다. 그런데 한글의 가장 뛰어난 점이 뭔지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담아낼 수 있는 소리가 무궁무진하다는 거지요. <바>, <빠>, <뽜>, <쀄> <빯> ...원리적으로는 무한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리와 대상 사이에는 필연성이 없습니다. 중국어로는 石이라고 쓰고 영어로는 stone이라고 쓰는 물체를 한국어에서는 돌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부르는 이름에는 사실은 어떤 필연성도 없어요. 그저 아득히 먼 옛날에 그렇게 부르다 보니까 그 언어에서는 땅에 나뒹구는 딱딱한 물체를 가리키는 호칭으로 굳어진 겁니다. 하지만 소리라는 것은 자꾸 그것이 반복되면 그 나라 언어에서는 뜻으로 굳어집니다. <돌>이라는 소리가 딱딱한 물체 일반을 가리키는 뜻으로 발전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뜻을 나타내는 데 한글의 또 한 가지 장점이 발휘됩니다. 한글은 최소한의 의미 변별력을 갖는 이런 <돌> 같은 형태소를 닿소리(자음) + 홀소리(모음) + 닿소리(자음)라는 안정된 구조로 하나의 글자 안에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 글자는 그러지 못합니다. 돌을 일본어로는 <이시>라고 나타내요. 뜻을 간결하게 담아내는 데 불리한 글자입니다. 그래서 한자에 자꾸만 기대는 거지요. 한글은 소리글자이지만 한자에 못지않은 뜻글자 노릇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큽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발음은 모두 [낫]으로 나지만 모습은 다른 글자들을 볼까요. <낟>은 낟알의 낟, <낫>은 벼 베는 낫, <낮>은 어둡지 않은 낮, <낯>은 뻔뻔스러운 낯, <낳>은 새끼 얻을 낳. 어떤 사람들은 그냥 소리나는 대로 편하게 <낫>이라고 통일시키면 되지 뭐하러 복잡하게 맞춤법을 따지느냐고 따지기도 하지만 그건 그렇게 볼 일이 아닙니다. 글자의 변별력이 없어지만 결국 다시 한자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일본 글자 가나에서는 가령 아무리 다양하게 표현하고 싶어도 발음도 표기도 가령 <나쓰>라고밖에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구별을 하기 위해서 자꾸만 한자에 기댔던 거구요. 한글 같은 뛰어난 글자를 가지고 그 초라한 일본 글자 같은 처지로 돌아가자는 게 말이 되나요? 한글은 가장 뛰어난 소리글자이지만 가장 뛰어난 뜻글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맞춤법이 자꾸만 헝클어지면 한글은 초라한 일본 글자 가나의 처지로 머지않아 떨어질지 모릅니다. 맞춤법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한글의 무한한 잠재력을 지키고 키워나가는 지름길입니다. ⓒ 개곰 월간 온오프 http://www.myonoff.com/